
옛부터 건국신화 속에서 도사노쿠니타케요리와케(土佐國建依別)라고 불린 ‘도사(고치의 옛이름)’는 장대한 기상이 넘치는 남자의 나라로 여겨졌습니다. 지세, 풍토, 인정, 어느 것을 보아도 고치를 정확히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. 934년 국사 기노쓰라유키가 교토(당시의 수도)까지의 55일에 걸친 배 여행을 가나문자로 기록한 [도사일기]에 의해 ‘도사’라는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게 됩니다.
戰國시대에는 초소가베(長宗我部) 등의 칠웅이 양립하고 있었습니다만, 초소가베에 의해 도사가 통일됩니다. 그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西軍의 편을 든 초소가베를 대신하여, 1601년 야마우치 가즈토요(山內一豊)가 도사의 성주로서 부임, 메이지유신에 이르게 됩니다.
에도막부 말기에는 야마우치 요도(山內容堂), 고토 쇼지로(後藤象二郎)와 같은 선각자, 사카모토 료마(坂本龍馬), 나카오카 신타로(中岡慎太郎) 등 많은 지사를 배출하였으며, 유신 이후에는 이타가키 다이스케(板垣退助), 가타오카 겐키치(片岡健吉)를 리더로 하는 자유민권운동이 일어나 ‘자유는 도사의 산간에서’라는 유명한 명언이 남아 있습니다. 이 밖에 나카에 초민(中江兆民), 고토쿠 슈스이(幸徳秋水)와 같은 사상가, 이와사키 야타로(岩崎弥太郎)와 같은 실업가, 마키노 도미타로(牧野富太郎), 데라다 도라히코(寺田寅彦) 등 다수의 위인을 배출하였습니다.